자산배분을 공부하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투자기간도 많이 남았는데 굳이 채권을 30%나 가지고 있어야 할까?
나도 처음에는 이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면 주식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게 오히려 논리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주식 70%, 채권 30%보다는 80%, 20%가 낫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주식 100%가 가장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자산배분을 조금씩 공부하면서 내가 한 가지를 빼놓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산배분은 가장 많이 버는 조합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조합을 찾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주식 70 채권 30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주식 70%, 채권 30%가 누구에게나 적합하다는 공식은 없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투자자 교육 사이트인 Investor.gov도 자산배분은 주식, 채권, 현금 등에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며, 적절한 비율은 투자기간과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Vanguard 역시 자산배분 사례를 설명하면서 공격적인 포트폴리오의 예로 주식 80%·채권 20%, 중간 수준으로 60%·40%, 보다 보수적인 형태로 40%·60% 등을 제시한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본 건 정확히 몇 퍼센트냐가 아니었다.
주식 비중이 높아질수록 성장 가능성은 커질 수 있지만 변동성도 커지고, 채권 비중을 늘리면 기대수익은 낮아질 수 있는 대신 전체 포트폴리오의 움직임을 완화하려는 목적이 생긴다는 것.
그러니까 70대 30이라는 숫자를 외우기보다 내가 왜 30%를 채권에 두려고 하는지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예전에는 채권 30%가 수익률을 깎아먹는 돈처럼 보였다
사실 이게 내가 가장 오래 걸렸던 부분이다.
주식시장이 계속 오르는 시기에는 채권이 정말 답답해 보인다.
S&P500 같은 주식 자산이 두 자릿수로 상승하는데 내 자산의 30%가 상대적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생긴다.
"그냥 이것도 주식에 넣었으면 더 많이 벌었을 텐데."
나도 자산 하나하나의 수익률만 놓고 보면 이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채권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게 아니라 주식과 채권을 합친 전체 계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채권이 주식보다 얼마나 덜 버느냐"가 아니라 "채권을 넣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하는 전체 변동성이 얼마나 달라지느냐"가 궁금해졌다.
100% 주식과 70대 30은 하락장에서 느낌이 꽤 달라질 수 있다
아주 단순한 가정을 하나 해봤다.
설명을 위한 예시로 투자금이 1,000만 원이고 주식이 30% 하락했다고 가정해보자.
| 포트폴리오 | 가정 | 전체 손실 |
|---|---|---|
| 주식 100% | 주식 -30% | 약 -300만 원 |
| 주식 80% / 채권 20% | 주식 -30%, 채권 0% | 약 -240만 원 |
| 주식 70% / 채권 30% | 주식 -30%, 채권 0% | 약 -210만 원 |
물론 현실에서는 이렇게 깔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채권도 손실이 날 수 있고, 특히 만기가 긴 채권은 금리가 오를 때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하락하는 시기도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위 숫자는 "채권이 있으면 반드시 방어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자산을 섞었을 때 특정 자산의 움직임이 전체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원리를 보기 위한 단순한 가정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 단순한 계산을 해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30% 하락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실제 계좌에서 -300만 원을 보는 것과 -210만 원을 보는 건 심리적으로 상당히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게 보기 시작한 건 수익률보다 '투자를 계속할 수 있느냐'였다
장기투자를 이야기할 때 복리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복리에는 생각보다 단순한 전제 하나가 있다.
시장에서 나가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기대수익률이 높은 포트폴리오라도 큰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팔아버린다면 처음 계산했던 장기 기대수익률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나는 위험 감수 능력과 위험 감수 의향이 꼭 같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기간이 20년, 30년 남았으니 이론적으로는 주식 변동성을 감당할 시간이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계좌가 실제로 30%, 40%씩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같은 금액을 계속 넣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상승장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공격적인 투자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짜 위험성향은 오히려 시장이 크게 떨어졌을 때 알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채권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도 있다
채권에 대한 고민이 예전과 조금 달라진 이유는 금리 환경도 있다.
2026년 9월 15일 미국 재무부 자료를 보면 미국 국채 수익률은 2년물이 약 4.67%, 10년물이 약 5.00%, 30년물이 약 5.36% 수준이었다.
이 숫자만 보고 장기채를 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만기가 길수록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미국 국채'라고 해도 초단기채와 10년물, 30년물은 포트폴리오에서 역할이 상당히 다르다.
다만 내가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채권을 보유하면서 받을 수 있는 수익률 자체가 예전의 초저금리 환경과는 꽤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채권을 넣는 순간 수익률을 너무 많이 포기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 기회비용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여지가 생겼다.
그렇다고 채권 30%가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도 조금 경계한다
인터넷에서 자산배분 이야기를 보면 가끔 "주식은 공격, 채권은 방어"처럼 너무 단순하게 설명될 때가 있다.
나는 이제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조금 어렵다.
채권도 종류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초단기 국채와 30년 장기국채는 같은 채권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가격 움직임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회사채에는 신용위험도 있고, 해외 채권에 투자한다면 환율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제 "채권을 30% 넣을까?"보다 다음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
그 30%는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게 만들 것인가?
생활비에 가까운 안정성을 원하는 건지, 주식 하락 때 리밸런싱할 자금을 원하는 건지, 이자수익을 원하는 건지, 금리 하락 때 가격 상승까지 기대하는 건지에 따라 선택할 채권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70대 30도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채권의 또 다른 역할은 싸진 자산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아닐까
자산배분을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리밸런싱이었다.
가령 원래 주식 70%, 채권 30%였는데 주식이 크게 떨어져 주식 비중이 60%까지 낮아졌다고 해보자.
처음 정한 비중으로 돌아가려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커진 채권 일부를 줄이고 가격이 떨어진 주식을 사게 된다.
말로 하면 굉장히 간단하다.
하지만 실제 하락장에서 사람들이 무서워서 주식을 팔고 싶어 하는 순간에 오히려 주식을 사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채권이 단순히 수익률이 낮은 자산이라기보다, 시장이 흔들렸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자산으로도 볼 수 있었다.
이 관점이 생기고 나서는 채권의 수익률을 S&P500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70대 30을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나는 주식 70%, 채권 30%가 가장 좋은 비율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투자기간이 길고 변동성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식 비중을 더 높이는 선택도 가능하고, 가까운 미래에 큰돈을 써야 하거나 손실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채권이나 현금 비중을 더 높이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예전에는 포트폴리오를 볼 때 "어떻게 하면 기대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요즘에는 그보다 "이 구성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실제로 유지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수익률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시장이 크게 흔들렸을 때 투자를 그만두지 않게 해주는 구조라면,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채권을 30% 넣기로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면, 그 안에서 초단기채와 중기채, 장기채는 도대체 어떻게 나누는 게 맞을까.
아마 자산배분에서 진짜 고민은 비율을 정한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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