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인데 왜 30% 넘게 떨어졌을까

지난번에는 미국 초단기채 ETF를 보면서 현금과 채권의 차이를 생각해봤다.

만기가 몇 달밖에 남지 않은 미국 국채는 가격 변동이 워낙 작아서 왜 사람들이 현금성 자산처럼 사용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반대편이 궁금해졌다.

만기가 20년, 30년 남은 미국 국채도 결국 같은 미국 국채인데 뭐가 그렇게 다를까?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라면 주식보다 훨씬 안전한 자산이고, 만기가 길어지면 이자를 조금 더 받을 수 있는 정도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장기채 ETF의 과거 가격과 실제 수익률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채권에서 말하는 '안전하다'는 표현을 내가 너무 한 가지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 국채가 안전한 것과 가격이 안 떨어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우리가 미국 국채를 안전하다고 말할 때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신용위험이다.

쉽게 말하면 돈을 빌려준 미국 정부가 약속한 원금과 이자를 갚을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투자자가 실제 계좌에서 경험하는 위험은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

채권 가격 자체가 움직이는 금리위험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하고 나니 장기채가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구분 쉽게 말하면
신용위험 돈을 빌린 곳이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할 위험
금리위험 시장금리가 움직이면서 내가 가진 채권 가격이 변하는 위험

미국 국채는 신용위험 측면에서는 대표적인 고품질 채권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만기가 아주 긴 국채는 금리 변화에는 상당히 민감할 수 있다.

'망할 가능성이 낮은 자산'과 '가격이 많이 안 떨어지는 자산'은 같은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TLT의 2022년 수익률을 보고 조금 놀랐다

장기 미국 국채를 이해할 때 많이 보는 ETF가 TLT다.

정식 명칭은 iShares 20+ Year Treasury Bond ETF이고, 이름 그대로 만기가 20년 이상 남은 미국 국채에 주로 투자한다.

그런데 BlackRock의 공식 성과자료를 확인해보니 2022년 TLT의 연간 총수익률은 -31.41%였다.

처음 이 숫자를 보면 조금 낯설다.

미국 국채 ETF가 한 해에 30% 넘게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식자료에서 2021년은 -4.76%, 2023년은 +2.96%, 2024년은 다시 -7.84%, 2025년은 +4.17%였다.

내가 생각했던 '채권은 주식보다 덜 흔들리는 자산'이라는 이미지와 꽤 차이가 있었다.

물론 모든 채권이 이렇게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다.

장기채였기 때문에 이렇게 큰 움직임이 가능했다.

범인은 결국 듀레이션이었다

앞 글에서도 듀레이션이라는 말을 잠깐 언급했는데 장기채에서는 이 숫자가 훨씬 중요해진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듀레이션은 시장금리가 변했을 때 채권 가격이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일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2026년 9월 2일 BlackRock 공식자료 기준 TLT의 유효 듀레이션은 약 15.04년이다.

반면 앞서 살펴본 0~3개월 미국 국채 ETF는 듀레이션이 0.1년 남짓이었다.

사실상 전혀 다른 자산처럼 느껴질 정도의 차이다.

듀레이션을 활용한 아주 거친 계산법도 있다.

다른 조건이 같다고 가정하고 시장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듀레이션이 15 정도인 채권은 가격이 대략 15% 정도 하락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방식이다.

실제 가격은 금리곡선의 변화, 채권 구성, 볼록성 등 여러 요소 때문에 정확히 이렇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왜 장기채가 금리에 그렇게 민감한지를 이해하는 데는 꽤 도움이 됐다.

왜 금리가 오르면 오래된 채권 가격이 떨어질까

처음에는 이 부분도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주 단순하게 연 3%의 이자를 주는 장기 국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발행되는 비슷한 국채가 연 5%를 준다면 어떨까?

누군가 내 3%짜리 채권을 똑같은 가격에 살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러니 기존 3% 채권의 시장가격이 떨어져야 새로 나온 5% 채권과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는 단기채도 똑같다.

차이는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다.

3개월 뒤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라면 금리가 바뀌어도 곧 원금을 돌려받고 새 금리로 다시 투자할 수 있다.

반면 20년 이상 남은 채권은 낮은 쿠폰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시장금리가 조금만 바뀌어도 현재 가치가 훨씬 크게 변한다.

지금 금리만 봐도 장기채가 왜 매력적으로 보이는지는 알겠다

그렇다고 지금 장기채가 아무 매력도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현재 금리만 보면 꽤 눈길이 간다.

미국 재무부가 공개한 2026년 9월 3일 수익률을 보면 3개월 미국 국채는 3.89%, 10년물은 4.77%, 20년물과 30년물은 각각 5.25%였다.

미국 국채 만기 2026년 9월 3일 수익률
3개월 3.89%
2년 4.34%
5년 4.52%
10년 4.77%
20년 5.25%
30년 5.25%

TLT 역시 2026년 9월 2일 기준 평균 만기가 약 26.1년이고 평균 만기수익률은 약 5.31%, 30일 SEC Yield는 5%대였다.

이 숫자만 보면 나도 솔직히 관심이 간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장기 국채에서 5% 안팎의 수익률을 볼 수 있다면 꽤 괜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5%라는 숫자만 보고 들어가면 장기채의 절반만 보고 있는 것이라는 데 있다.

"금리 내려갈 것 같으니까 TLT 사면 되는 것 아닌가?"

장기채 이야기를 보다 보면 결국 이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금리가 오르면 장기채 가격이 많이 떨어진다면 반대로 금리가 내려가면 많이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맞다.

그게 바로 장기채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듀레이션이 길다는 것은 금리가 내려갈 때도 가격이 크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경기 침체나 물가 안정으로 장기금리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을 예상한다면 장기 국채가 상당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조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과 20년·30년 시장금리가 반드시 같은 폭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는 내리는데 장기금리가 안 내려갈 수도 있다

예전에는 나도 '금리 인하 = 장기채 상승'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장기 국채금리는 현재의 기준금리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성장률, 인플레이션 기대, 정부의 국채 발행량, 그리고 아주 긴 기간 동안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보상까지 같이 반영된다.

이 추가 보상을 흔히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이라고 부른다.

BlackRock의 2026년 중간 전망에서도 이 부분을 꽤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높은 정부부채와 많은 국채 발행이 이어질 경우 투자자들이 장기채 보유에 더 큰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이런 환경에서는 장기금리가 쉽게 내려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BlackRock은 그래서 2026년 8월 기준으로 장기 미국 국채보다 단기·중기 미국 국채 쪽을 상대적으로 선호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었다.

이걸 보고 나니 장기채를 단순한 '금리 인하 베팅'으로 보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서 개인 채권과 장기채 ETF의 차이도 꽤 중요했다

장기채를 공부하면서 또 하나 헷갈렸던 게 있다.

"채권 가격이 떨어져도 만기까지 기다리면 원금을 돌려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개별 미국 국채를 직접 사서 만기까지 보유한다는 이야기라면 이해하기 쉽다.

채무불이행이 없고 중간에 팔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만기에는 정해진 원금을 받는다.

그런데 TLT 같은 장기채 ETF는 조금 다르다.

TLT 자체에 '20년 뒤 만기'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다.

펀드는 계속해서 잔존만기가 긴 미국 국채를 보유하면서 장기 국채 지수를 추종한다.

시간이 지나 기존 채권의 만기가 짧아지면 포트폴리오에서 빠지고 다시 긴 채권이 들어오는 구조다.

그래서 '그냥 ETF를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원금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ETF 자체가 계속 장기 듀레이션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했다.

그렇다면 2022년 같은 일이 또 생길 수 있을까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2022년의 사례가 보여준 것은 꽤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이 높고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는 환경에서는 주식과 장기채가 동시에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미 연준의 당시 금융안정보고서도 높은 인플레이션과 통화긴축 과정에서 장기 국채금리가 크게 상승했고 장기 국채 가격이 하락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장기 국채를 주식이 떨어질 때 무조건 올라주는 보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특히 인플레이션 자체가 문제인 하락장이라면 주식과 채권 모두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장기채를 완전히 빼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으면 장기채가 굉장히 위험한 투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도 내가 말하고 싶은 방향은 아니다.

장기채의 큰 금리 민감성은 단점인 동시에 특징이다.

경기가 크게 식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장기금리가 내려간다면 이 듀레이션이 오히려 강력한 상승 동력이 될 수 있다.

또 현재처럼 장기 국채 수익률이 5% 안팎에 위치하면 과거 초저금리 시기와 비교해 출발점 자체도 달라졌다.

그래서 장기채를 나쁘다고 보는 것보다 내가 이 자산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장기채를 '안전자산 자리'에 바로 넣지 않을 것 같은 이유

나는 초단기채를 볼 때는 비교적 역할이 명확하다고 느꼈다.

달러 대기자금을 두면서 현재 단기금리에 가까운 이자를 받고, 가격 변동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목적이다.

그런데 장기채는 조금 다르다.

수익률도 받고 싶지만 동시에 앞으로 장기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판단까지 어느 정도 들어가게 된다.

금리가 예상과 반대로 움직이면 미국 국채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평가금액이 움직일 수 있다.

TLT가 2022년 한 해 -31%를 기록한 것만 봐도 그렇다.

내가 주식의 변동성을 줄이려고 넣은 자산이 상황에 따라 20~30%씩 움직인다면, 적어도 나는 그것을 단순히 '안전한 부분'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중간이 궁금해졌다

초단기채를 보면 마음은 편하지만 앞으로 금리가 내려가면 받는 이자도 금방 내려간다.

장기채는 현재 금리를 길게 가져갈 수 있고 금리 하락 때 큰 가격 상승도 기대할 수 있지만 변동성이 너무 크다.

그래서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를 필요가 있을까?

3년, 5년, 7년 정도의 미국 국채라면 초단기채보다는 금리를 조금 더 오래 확보하면서도 20~30년 장기채만큼 듀레이션이 길지는 않다.

실제로 2026년 시장 전망을 보면 Vanguard와 BlackRock 모두 고품질 채권 자체에는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단기~중기 영역을 눈여겨보고 있다.

나한테도 이쪽이 조금 더 현실적인 질문으로 느껴졌다.

장기채를 얼마나 살지를 고민하기 전에 내가 채권에서 원하는 게 이자인지, 주식 방어인지, 금리 하락에 대한 베팅인지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채권을 그냥 '주식보다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단기채와 장기채를 하나씩 보고 나니 지금은 그렇게 묶어서 말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같은 미국 국채라도 만기가 달라지면 가격이 움직이는 방식도, 포트폴리오에서 맡길 수 있는 역할도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이걸 알고 나니 다음에는 정말 그 중간에 있는 미국 중기채가 장기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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