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당연히 주가가 크게 떨어질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산 가격보다 내려가고 계좌에 마이너스가 찍히면 불안할 테니까. 실제로 돈이 줄어드는 걸 보는 건 아무리 장기투자라고 해도 편할 리 없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가격이 계속 올라갈 때가 더 애매하다.
아내와 매달 일정 부분을 미국 ETF에 넣고 있는데, 막상 매수할 시점이 오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지금 너무 많이 오른 것 아닌가?”
“조금 기다렸다가 조정 오면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번 달에도 비슷했다.
그래도 결국 하던 방식대로 미국 ETF를 샀다.
무조건 지금이 싸다고 판단해서 산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가격을 보면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적립식 투자를 계속하면서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내가 시장을 맞히려고 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투자 자체가 훨씬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VOO 숫자를 보니 솔직히 싸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내가 괜히 비싸다고 느끼고 있는 건가 싶어서 숫자를 다시 찾아봤다.
2026년 8월 14일 기준 Vanguard가 공개한 VOO의 연초 이후 NAV 수익률은 14.52%였다. 7월 말 기준 최근 1년 NAV 수익률도 19.53%였다.
이 정도 숫자를 보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사야 하나?”라는 생각과 “이렇게 오른 뒤에 들어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더 눈에 들어온 숫자는 밸류에이션이었다.
2026년 6월 말 기준 Vanguard가 공개한 VOO의 주가수익비율, 흔히 말하는 P/E는 25.1배였다.
P/E라는 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주 단순하게 보면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현재 주식 가격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는 기준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P/E 하나만 가지고 시장이 비싸다거나 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장률도 다르고 금리도 다르고 기업 구성도 달라진다.
그래도 숫자를 보고 나니 적어도 “지금 미국 주식이 엄청 싸 보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그럼 적립식 투자를 잠깐 멈춰야 하는 걸까?
조정을 기다리면 더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만 해보면 굉장히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지금 100만 원을 투자한다고 가정해보자.
며칠이나 몇 달 뒤 시장이 10% 떨어진다면 그때 투자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ETF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싸 보일 때 현금을 들고 기다렸다가 떨어졌을 때 사면 되는 것 아닐까.
나도 이런 생각을 한다.
문제는 한 단계만 더 들어가면 생긴다.
언제부터 조정이라고 판단해야 할까?
5% 떨어지면 살까.
10%까지 기다릴까.
10% 떨어진 다음에는 20%까지 떨어질까 봐 또 기다리지 않을까.
반대로 기다리는 동안 시장이 10% 더 올라가면 어떻게 할까.
그때는 지금보다 더 비싸 보일 텐데 과연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는 미래 가격을 맞히는 문제보다 내 행동을 맞히는 문제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조금 기다리면 싸게 살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실제로 폭락이 오면 뉴스 분위기는 지금과 전혀 다를 가능성이 크다.
경기침체 이야기나 기업 실적 악화 같은 뉴스가 쏟아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정말 용감하게 매수할 수 있을까?
솔직히 확신하기 어렵다.
적립식 투자는 싸게 사는 기술보다 결정을 줄이는 방법에 가까웠다
미국 SEC의 투자자 교육 사이트 Investor.gov에서는 달러 코스트 애버리징을 시장의 등락과 관계없이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금액을 계속 투자하기 때문에 가격이 낮을 때는 더 많은 수량을 사고, 가격이 높을 때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량을 사게 된다.
이 설명만 보면 굉장히 단순하다.
그런데 직접 적립식 투자를 해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부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적립식 투자의 장점은 반드시 평균 매입단가를 낮춰준다는 데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매달 수많은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번 달 미국 증시 전망은 어떤지.
금리는 어떻게 될지.
다음 달에 조정이 올지.
이번에는 조금 더 살지.
아니면 현금을 쌓아둘지.
매번 이런 판단을 하다 보면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피곤하다.
특히 나처럼 회사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업무시간에는 일을 해야 하고 퇴근하면 또 내 생활이 있다.
투자를 위해 경제를 공부하는 건 좋지만 매달 시장 전망을 정확하게 맞혀야만 돈을 넣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 적립식은 수익률 전략이라기보다 생활 습관에 조금 더 가깝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주가가 아무리 비싸도 무조건 사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조금 경계한다.
적립식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 위험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높은 가격에 산 주식은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오랫동안 손실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Investor.gov 역시 정기적인 장기 투자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일정 금액을 투자하는 것을 강조한다. 2026년 투자자 교육 자료에서도 매 급여 시점마다 감당할 수 있는 고정 금액이나 소득의 일부를 장기간 투자하는 방식을 예시로 들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정기적으로”보다 오히려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적립식 투자가 오래 가려면 주가가 올랐을 때뿐 아니라 크게 떨어졌을 때도 같은 돈을 넣을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활비를 극단적으로 줄여 투자금을 최대한 크게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상승장에서는 계좌가 빠르게 커지니 좋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큰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거나 시장이 크게 떨어졌는데 생활비가 부족해지면 투자 자산을 팔아야 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더 걱정된다.
그래서 요즘은 이번 달 ETF를 조금 더 싸게 사는 것보다, 몇 년 뒤에도 계속 ETF를 살 수 있는 금액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내와 같이 투자하니 고점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혼자 투자했다면 이번 달 시장이 많이 올랐으니 현금을 조금 남겨두자는 판단을 더 쉽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매달 일정 부분을 투자하다 보니 투자에 하나의 기준이 생긴다.
이번 달 기분이 좋다고 많이 사고, 불안하다고 하나도 안 사는 방식보다는 우리가 정한 범위 안에서 꾸준히 가는 것이다.
이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돈을 넣는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시장이 계속 오르면 욕심도 생긴다.
“조금 더 넣었어야 했나?”
반대로 가격이 비싸 보이면 불안해진다.
“이번 달만 건너뛸까?”
이 두 감정이 계속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적립식 투자를 하면서 시장의 변동성보다 내 감정의 변동성이 더 크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다.
그래서 정해둔 방식이 있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내가 오늘 시장을 맞히지 않아도 된다.
다음 달에도 월급이 들어오고, 우리가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사실 가장 무서운 건 떨어지는 것보다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최근처럼 시장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는 묘한 감정이 하나 더 생긴다.
FOMO라고 부르는 감정이다.
쉽게 말하면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같은 불안함이다.
미국 ETF가 계속 오르면 “지금이라도 투자금을 더 늘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높은 수익률 이야기를 보면 더 그렇다.
하지만 이때 투자금을 갑자기 크게 늘리는 것도 결국 시장 움직임에 반응하는 행동이다.
가격이 떨어져 무서워서 투자를 줄이는 것과, 가격이 올라 불안해서 투자를 늘리는 것은 방향만 다를 뿐 비슷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자료를 찾아보면서 내 생각이 꽤 달라졌다.
예전에는 적립식 투자의 핵심을 “언제 사느냐를 신경 쓰지 않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시장이 나를 흥분시키든 겁먹게 하든 내 생활의 투자 속도를 크게 바꾸지 않는 것.
오히려 이게 적립식의 핵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달에도 그냥 샀다
이번 달 미국 ETF를 샀다고 해서 지금 가격이 저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조정이 올 수도 있다.
내가 이번 달 산 가격보다 10%, 20% 아래에서 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그때는 분명 아쉽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반대로 시장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내린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나는 시장의 다음 움직임보다 우리 부부가 세워둔 적립식 투자 방식을 더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같은 방법을 쓸지는 모르겠다.
소득이 달라질 수도 있고 생활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 투자 대상이나 자산 배분에 대한 생각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립식을 중단하고 싶지는 않다.
35살 회사원인 내 입장에서 시장보다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다.
내가 얼마를 소비할지.
매달 얼마를 투자할지.
그리고 그 행동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지.
주가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투자하면서는 예측보다 반복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달에도 그냥 샀다.
아마 진짜 시험은 시장이 많이 오른 지금이 아니라, 언젠가 크게 떨어졌을 때도 이 말을 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참고한 자료
Vanguard S&P 500 ETF (VOO) 공식 자료
https://advisors.vanguard.com/investments/products/voo/vanguard-sp-500-etf
Investor.gov - Dollar Cost Averaging
https://www.investor.gov/introduction-investing/investing-basics/glossary/dollar-cost-avera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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