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PER 10배와 30배의 차이를 생각해봤다.
자료를 찾아본 뒤에는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좋은 기업을 사더라도 내가 처음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장기수익률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걸 이해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적립식 투자에서 더 불편한 질문이 생겼다.
S&P500이 비싸 보일 때도 매달 계속 사는 게 맞을까?
가격이 중요하다면서 비싼 시장을 계속 산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현금으로 기다리자니 언제가 충분히 싸진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번에는 이 두 생각 사이에서 뭐가 더 현실적인지 자료를 찾아봤다.
일단 지금 미국 주식이 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이 부분부터 확인해봤다.
2026년 7월 Vanguard가 발표한 시장평가 자료에서는 미국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았던 1분기보다 2분기에 더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Vanguard가 사용하는 조정 CAPE 기준으로 미국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은 역사적 표본에서 사실상 가장 높은 영역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 말은 '내일부터 S&P500이 폭락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현재 기업이익에 비해 미국 주식을 싸게 사고 있는 환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에 가깝다.
실제 S&P Dow Jones Indices의 공식자료를 보면 2026년 8월 말 기준 S&P500은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약 13.5%의 가격수익률을 기록했다.
최근 성과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앞으로도 비슷한 숫자를 당연하게 기대하기 쉬운 환경이다.
그런데 과거 수익률과 앞으로의 기대수익률은 같은 숫자가 아니었다.
Vanguard가 미국 주식 기대수익률을 낮춘 이유
Vanguard는 2026년 6월 30일 시장 상황을 반영해 향후 10년 미국 주식의 예상 연평균 명목수익률 범위를 4.2~6.2% 정도로 제시했다.
3개월 전 전망은 4.9~6.9%였다.
불과 한 분기 사이 주가가 오르고 밸류에이션이 더 높아지자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오히려 낮아진 것이다.
이게 앞에서 PER을 공부하면서 이해했던 내용과 정확히 연결됐다.
기업의 미래가 그대로라면 내가 오늘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수록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률은 낮아질 수 있다.
그래서 '장기투자니까 매수가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는 이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장기투자라서 오히려 시작 가격이 장기수익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S&P500 적립을 멈춰야 할까?
여기까지 보면 답이 쉬워 보인다.
미국 주식이 역사적으로 비싸고 앞으로 기대수익률까지 낮아졌다면,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면 되지 않을까?
나도 자연스럽게 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Vanguard의 같은 자료에서 바로 다음 경고가 나온다.
밸류에이션은 단기뿐 아니라 중기 수익률까지 예측하는 데 좋지 않은 도구라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앞으로 10년 정도의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음 달이나 내년에 시장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비싼 시장이 더 비싸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어려워졌다.
'비싸니까 기다린다'에는 사실 두 번의 판단이 필요했다
시장 타이밍을 생각해보면 한 번만 맞히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실제로는 최소 두 번의 판단이 필요하다.
언제 투자를 멈출 것인가.
그리고 더 어려운 것이
언제 다시 들어갈 것인가.
예를 들어 S&P500이 비싸다고 생각해 지금부터 현금을 모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시장이 이후 20% 더 오른 다음 15% 조정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드디어 떨어졌다'며 사야 하는지, 아직 처음 기다리기 시작했을 때보다 비싸니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애매해진다.
반대로 정말 30% 폭락이 왔다고 해도 그때는 뉴스와 경기 전망이 지금보다 훨씬 무서울 가능성이 높다.
평소에는 -30%면 기쁘게 사겠다고 생각해도 실제 그 상황에서는 '조금 더 떨어질 것 같다'며 다시 기다릴 수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장을 기다린다는 전략에는 숫자보다 사람의 심리가 훨씬 많이 들어간다.
적립식 투자의 장점은 싸게 사는 기술이 아니었다
여기서 적립식 투자를 다시 봤다.
Dollar Cost Averaging, 흔히 DCA라고 부르는 방식은 일정한 금액을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달 100만 원씩 같은 ETF를 사는 식이다.
가격이 비쌀 때는 적은 수량을 사고, 가격이 떨어지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수량을 살 수 있다.
이 설명 때문에 적립식 투자가 평균 매수가격을 낮춰주는 마법 같은 전략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도 조금 과장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Fidelity도 2026년 적립식 투자 안내에서 DCA가 시장 변동과 투자자의 심리적 판단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손실을 막아주는 전략은 아니며, 시장이 계속 상승한다면 처음부터 투자한 것보다 수익률이 낮아질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즉 적립식의 가장 큰 장점은 바닥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바닥을 맞힐 필요 자체를 줄여주는 것.
나는 이쪽이 훨씬 중요한 장점이라고 느꼈다.
특히 월급으로 투자한다면 조금 다른 문제였다
적립식 투자를 이야기할 때 하나 구분할 부분도 있었다.
이미 1억 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돈을 12개월에 나눠 투자하는 것과, 매달 월급에서 100만 원이 새롭게 생겨서 그 돈을 투자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첫 번째는 이미 가지고 있는 돈을 시장 밖에 일부 남겨두는 선택이다.
시장이 계속 올라간다면 기다리는 현금 때문에 기회비용이 생긴다.
반면 두 번째는 애초에 미래 월급을 오늘 투자할 수 없다.
돈이 생기는 시점마다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적립식이 된다.
나는 장기 적립식 투자를 생각할 때 이 차이가 꽤 중요하다고 본다.
'적립식이 일시투자보다 무조건 좋다'가 아니라 내 돈이 어떤 방식으로 생기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싼 시장에서 적립식의 단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고 적립식이면 가격을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앞으로 몇 년 동안 높은 밸류에이션이 정상화된다면 지금 투자한 돈의 초기 수익률은 좋지 않을 수 있다.
적립식 투자도 시장 하락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오늘 S&P500을 샀는데 시장 전체가 30% 떨어지면 내가 오늘 산 지분도 같이 떨어진다.
그리고 오랫동안 주가가 제자리라면 꽤 긴 시간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적립식 투자에서 '장기적으로 오르니까 무조건 괜찮다'는 표현도 나는 조금 불편하다.
S&P500의 과거 장기 성과가 좋았다는 사실은 앞으로 같은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
Vanguard가 현재 미국 주식의 10년 기대수익률을 과거 10년 실제 수익률보다 훨씬 낮게 보는 이유도 결국 현재 가격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비싸다는 이유 하나로 투자 계획을 바꾸는 것도 애매했다
여기서 나름대로 중요한 기준이 생겼다.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이유와 내 포트폴리오의 구조가 잘못됐다는 이유를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래 내가 장기적으로 주식 70%, 채권 30%를 가지고 가기로 정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미국 주식이 많이 올라서 어느 순간 주식이 80%, 채권이 20%가 됐다.
이때 주식을 조금 줄이거나 새로 들어오는 돈을 채권에 더 배분하는 것은 시장 폭락을 예측하는 행동과는 조금 다르다.
원래 계획했던 위험 수준으로 돌아가는 리밸런싱에 가깝다.
반대로 포트폴리오 비중은 처음 계획과 같은데 단지 '요즘 너무 많이 오른 것 같다'는 이유로 주식 적립을 전부 중단한다면 시장 방향을 예측하는 행동이 훨씬 강해진다.
나는 이 둘을 예전에는 비슷하게 봤는데 지금은 꽤 다르게 느껴진다.
미국 주식이 비싸다면 '안 산다' 말고 다른 선택도 있었다
Vanguard의 2026년 자료를 보면서 또 흥미로웠던 점은 미국 주식 전체를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주식 안에서도 밸류에이션 차이가 꽤 크다고 평가한다.
특히 성장주와 일부 대형 기술주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고 있는 반면 미국 가치주는 장기 기대수익 측면에서 더 매력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이외 선진국 주식이나 고품질 채권 역시 미국 대형 성장주와는 다른 기대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걸 보고 나니 선택지가 꼭 두 개뿐인 것은 아니었다.
'S&P500 계속 매수' 아니면 '전부 현금으로 대기'
사이에 꽤 많은 선택이 있다.
- S&P500 적립을 기존 계획대로 유지한다.
- 전체 주식 비중이 높아졌다면 채권 쪽에 신규 자금을 더 넣는다.
- 미국 주식에 지나치게 집중됐다면 다른 지역 주식도 검토한다.
- 성장주 비중이 너무 커졌다면 가치주나 다른 스타일을 살펴본다.
- 가까운 시기에 사용할 돈은 애초에 주식시장 밖에 둔다.
이런 식이면 '폭락 시점을 맞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 된다.
S&P500 자체가 예전과 똑같은 분산자산인지도 생각해볼 부분이었다
S&P500은 500개 대형 미국 기업으로 구성되고 미국 대형주 시장을 대표하는 지수다.
S&P Dow Jones Indices에 따르면 미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80%를 포함한다.
500개 기업이면 굉장히 넓게 분산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시가총액 가중방식이기 때문에 가장 큰 회사들의 주가가 많이 오르면 그 회사들의 지수 비중 역시 커진다.
결국 S&P500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개별주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산돼 있지만, 특정 시기에 미국 초대형 성장주의 영향력이 크게 높아질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S&P500이 비싼가?'라는 질문을 할 때 미국 기업 전체가 똑같이 비싼 것인지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멈췄다가 20% 싸게 살 수 있다면 당연히 기다리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은 너무 당연하다.
오늘 100원인 것을 확실하게 80원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굳이 오늘 살 이유가 없다.
나도 기다릴 것이다.
문제는 시장에서는 그 80원이 실제로 오는지, 언제 오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80원이 오기 전에 120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시장 타이밍 문제를
'지금 시장이 비싼가?'
하나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내가 기다리면 더 좋은 가격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까지 자신 있는가?'
인 것 같다.
여기까지 묻고 나면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많이 줄어든다.
비싼 시장에서 오히려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게 현실적이었다
자료를 찾아본 뒤 내가 가장 납득한 대응은 의외로 재미없는 쪽이었다.
투자 자체를 중단하는 것보다 앞으로 기대하는 수익률을 낮추는 것이다.
최근 10년 S&P500이 연 10%를 훌쩍 넘는 성과를 냈다고 해서 앞으로 10년 투자계획에도 그대로 10~13%를 넣지 않는 것이다.
현재 Vanguard의 미국 주식 장기 기대수익률이 4.2~6.2% 수준이라는 전망이 정확히 맞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최근 10년이 좋았으니 앞으로도 비슷하겠지'라는 가정을 경계하는 자료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예상수익률이 낮아진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저축률, 투자기간, 자산배분을 다시 보게 된다.
나는 이게 시장 고점을 맞히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적립식 투자의 진짜 시험은 하락장이 온 다음일지도 모른다
시장 상승기에는 적립식 투자가 정말 쉽다.
월급날마다 ETF를 사고 계좌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된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기다리던 하락장이 실제로 왔을 때다.
예를 들어 S&P500이 30%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지금은 '싸게 살 기회'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30% 하락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
경기침체, 금융위기, 전쟁, 기업이익 악화 같은 무서운 이야기가 같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때도 같은 금액을 계속 투자할 수 있어야 적립식 전략이 원래 의도대로 작동한다.
그래서 적립식 투자는 매수방법보다 오히려 행동을 미리 정해두는 방법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S&P500이 비싸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방식
예전 같으면 두 방향 중 하나로 생각했을 것 같다.
'S&P500은 장기적으로 올라왔으니까 그냥 계속 사면 된다.'
아니면
'지금 너무 비싸니까 폭락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둘 다 조금 극단적으로 느껴진다.
현재 미국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사실은 무시하지 않는다.
높은 가격은 앞으로의 장기 기대수익률을 낮출 수 있고, 시장이 예상보다 나쁜 충격을 받을 때 하락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음 조정 시점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 투자기간이 충분히 길고 원래 정해둔 자산배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단순히 시장이 비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기적인 투자를 전부 멈추는 것에는 아직 확신이 없다.
대신 예전처럼 아무 숫자도 보지 않고 사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내 생각이 조금 미묘하게 바뀌었다.
적립식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과 밸류에이션을 무시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현재 가격이 높은 환경에서는 몇 가지를 더 신경 쓰고 싶다.
- 과거 10년 수익률을 앞으로의 기본 기대수익률로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 주식 상승으로 원래 목표했던 주식 비중을 초과했는지 확인한다.
- 미국 대형주 한쪽으로 자산이 지나치게 몰려 있는지 본다.
- 가까운 시일에 쓸 돈까지 주식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 하락장이 와도 같은 투자계획을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밸류에이션은 '오늘 살까 말까'를 알려주는 신호라기보다 내 기대와 위험수준이 너무 낙관적으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하는 경고등에 가까워 보인다.
결국 적립식 투자에서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게 하나 있었다
가장 싼 가격에 사고 싶은 마음이다.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바닥에서 사고 싶다.
그런데 바닥을 알아내려고 기다리는 순간부터 나는 기업의 장기 성장에 투자하는 사람인 동시에 시장의 단기 방향까지 맞혀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할 자신은 아직 없다.
그래서 적립식 투자의 장점은 최고의 매수가격을 얻는 데 있다기보다 완벽한 매수가격을 포기하는 대신 투자계획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S&P500이 지금 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 자료만 보면 꽤 비싼 편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앞으로의 기대수익률도 조금 낮춰서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실과 '그러니 적립을 중단해야 한다'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다.
내가 그 간격을 메울 만큼 다음 시장 움직임을 잘 예측할 수 없다면, 결국 내 투자기간과 자산배분을 정해두고 계속 투자하면서 위험을 관리하는 쪽이 지금의 내 생각에는 더 가깝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또 하나 궁금해졌다.
S&P500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나스닥100까지 같이 사는 건 정말 분산투자일까?
둘 다 ETF라는 이유로 다른 자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안에 들어 있는 기업을 보면 이야기가 꽤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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