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ETF를 적립식으로 사기 전에는 한 가지를 꽤 단순하게 생각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무서울 것이고, 오르면 기분이 좋을 거라고.
아마 대부분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아내와 매달 일정 금액을 미국 ETF에 넣다 보니 조금 의외의 순간이 생겼다.
나는 오히려 시장이 많이 오른 날 매수 버튼을 누르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 가격에 굳이 지금 사야 하나?”
떨어질 때는 싸졌다는 이유라도 있다.
그런데 계속 오르는 시장에서는 내가 비싼 가격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부터 적립식 투자가 생각보다 심리적인 투자 방식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떨어지면 더 사겠다는 말은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었다
투자 관련 이야기를 보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좋은 자산이 떨어지면 오히려 싸게 살 기회라는 이야기다.
나도 이 논리 자체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같은 ETF를 장기적으로 계속 살 생각이라면 가격이 낮을수록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수량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SEC의 Investor.gov에서도 달러 코스트 애버리징을 시장의 상승과 하락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투자하는 방법으로 설명한다. 이렇게 하면 가격이 낮을 때 더 많은 수량을 사고, 가격이 높을 때는 적은 수량을 사게 된다.
설명만 보면 꽤 편해 보인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떨어지면 오히려 좋지. 그때 더 사면 되니까.”
그런데 실제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ETF가 하루 이틀 떨어지는 것과 몇 달 동안 계속 떨어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계좌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주변 분위기도 함께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뉴스에서는 경기침체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기업 실적이 나빠질 거라는 전망도 나올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아직 큰 하락장을 충분히 겪었다고 말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너무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막상 더 불편했던 건 계속 오를 때였다
반대로 시장이 계속 오르면 계좌는 좋아진다.
기분도 좋다.
그런데 새로운 돈으로 ETF를 사려고 하면 묘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지난달보다 비싸게 사야 하기 때문이다.
두 달 전보다도 비싸고, 몇 달 전 가격을 기억하고 있으면 더 아깝다.
“그때 더 살걸.”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리고 그다음 생각은 거의 정해져 있다.
“이번 달은 조금 기다려볼까?”
며칠 정도 조정이 나오면 그때 사고 싶어진다.
문제는 그 조정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시장이 더 오르면 상황은 더 이상해진다.
처음에는 비싸서 못 샀는데 5% 더 올라가면 훨씬 더 비싸 보인다.
그러면 다시 기다린다.
이 과정을 생각하다 보니 적립식 투자에서 가장 큰 적은 꼭 폭락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오르는 시장도 사람을 계획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2025년 시장을 보니 이 고민이 괜히 생기는 건 아니었다
최근 시장 흐름을 찾아보면 왜 이런 심리가 생기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된다.
S&P Dow Jones Indices의 SPIVA 자료를 보면 S&P500은 2025년에 18% 상승했고, 한 해 동안 39번의 사상 최고 종가를 기록했다.
이런 시장을 보고 있으면 투자자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계속 오르니까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너무 많이 오른 것 같아서 지금 사기도 불안하다.
나도 바로 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더 재미있는 건 전문가들도 시장을 계속 이기는 게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SPIVA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미국 대형주 액티브 펀드의 79%가 S&P500보다 낮은 성과를 기록했다.
이 숫자를 보고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전문가도 시장의 움직임을 계속 앞서가기 어려운데, 내가 월급날마다 “이번 달은 고점 같으니 건너뛰자”고 판단하는 게 과연 얼마나 잘될까.
가끔 한두 번 맞힐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몇 년 동안 반복해서 맞힐 자신은 없다.
적립식의 장점은 수익률보다 결정을 줄여주는 데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적립식 투자 장점을 평균 매입단가라는 말로만 이해했다.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꾸준히 사면 평균적인 가격으로 투자하게 된다는 정도였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는 적립식의 가장 큰 장점이 매달 새로운 투자 판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더 가깝다.
이번 달에는 미국 경기가 어떤지.
연준이 금리를 어떻게 할지.
AI 주식이 너무 비싼 건 아닌지.
환율이 내려갈지.
조정이 곧 올지.
이런 것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 투자하려고 하면 매달 결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Vanguard 역시 2026년 전망에서 미국 기술주와 AI 투자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강하지만 높은 밸류에이션과 관련된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봤다. 동시에 향후 5~10년 관점에서는 미국 가치주, 미국 외 선진국 주식, 우량 채권 등 다른 자산의 위험 대비 기대수익도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런 전망을 읽으면 더 헷갈린다.
미국 기술주가 더 갈 수도 있고, 다른 자산이 더 좋아질 수도 있다.
결국 미래는 열려 있다.
그래서 나는 전망을 안 보겠다는 쪽보다는 전망을 보더라도 매달 적립 여부까지 계속 바꾸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내와 같이 투자하니 더 조심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혼자 투자하는 돈이라면 내 판단이 틀려도 내가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매달 일정 금액을 넣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다르다.
내가 시장을 한번 맞혀보겠다고 적립을 멈췄는데 이후 시장이 크게 올라버리면 어떨까.
반대로 너무 낙관해서 갑자기 투자금을 늘렸는데 바로 큰 하락이 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점점 한쪽으로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투자에서는 “이번 달 전망이 어떻다”보다 “우리가 원래 어떤 방식으로 하기로 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려고 한다.
물론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거나 투자 목표 자체가 달라지면 계획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시장이 많이 올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립을 중단하는 건 조금 다르게 보고 있다.
미국 SEC의 2026년 투자자 교육 자료도 매 급여 시점마다 감당할 수 있는 고정 금액이나 소득의 일정 비율을 정기적으로 투자하고, 이를 장기간 이어가는 방식을 장기 자산 형성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설명한다.
이런 설명을 볼수록 역시 중요한 건 한두 달의 완벽한 매수 가격보다 오랫동안 반복할 수 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오르는 장에서는 욕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겼다
주가가 떨어지면 두려움이 생긴다.
이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주가가 오르면 욕심만 생기는 줄 알았다.
막상 적립식으로 투자해보니 두려움도 같이 생겼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그리고 지금 사면 꼭 고점에 잡힐 것 같은 마음.
이 둘이 동시에 들어온다.
그래서 시장이 크게 오른 날에는 오히려 평소보다 투자 관련 글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된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경고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이 찾아볼수록 전망은 더 다양하다.
누군가는 아직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밸류에이션 부담을 이야기한다.
결국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시장의 고점을 찾으려고 투자하는 건가, 아니면 오랫동안 자산을 모으려고 투자하는 건가?
우리 부부의 목적은 지금까지는 후자에 더 가깝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매수하는 건 조금 다르다고 본다
여기서 적립식을 무조건 자동매수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오히려 꾸준히 살수록 내가 무엇을 사고 있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TF의 투자 대상이 바뀌었는지.
비용은 어떤지.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비중이 지나치게 몰려 있지는 않은지.
우리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투자금이 커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처음 세웠던 목표와 지금 투자 방식이 여전히 맞는지.
이런 건 주기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Investor.gov의 2026년 투자 가이드 역시 자산배분과 분산, 투자 비용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적절한 자산 구성은 투자 기간과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걸 적립식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싶다.
매수 시점을 매번 예측하지 않는 것과 투자 자체를 생각 없이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지금은 고점보다 내가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솔직히 앞으로 미국 증시가 더 오를지 조정을 받을지 나는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사고 있는 가격이 몇 년 뒤 돌아봤을 때 비싸 보일 수도 있고 싸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투자하면서 점점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몇 년 뒤 결과를 결정하는 건 이번 달 매수가가 몇 퍼센트 비쌌는지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의 월급날에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시장이 크게 떨어졌을 때.
반대로 너무 많이 올라서 겁날 때.
주변 사람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자랑할 때.
그때마다 내 방식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것.
지금은 그게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주가가 떨어지는 날이 가장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매달 ETF를 사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르는 날에는 오르는 날만의 불안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꽤 단순하다.
생활에 무리하지 않는 금액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계속 투자하는 것.
아마 진짜 적립식 투자는 가격이 쌀 때 신나게 사는 게 아니라, 비싸 보일 때도 원래 정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에서 시험받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과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참고한 자료
U.S. SEC Investor.gov - Build Wealth Over Time Through Saving and Investing
https://www.investor.gov/files/build-wealth-over-time-through-saving-and-investing
S&P Dow Jones Indices - SPIVA U.S. Year-End 2025
https://www.spglobal.com/spdji/en/spiva/article/spiv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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